지난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그칠 줄 모르던 비는 카메라를 들고 밖을 향하던 생활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돌아 봄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하는 상황이지만 다시 해는 내리고 그림자를 그린다. 변해버린 일상은 찰나의 순간을 더욱 짧게 만들고 멈춰 있던 장면은 살아 숨쉬듯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 떨림은 반가움과 불안이 오묘하게 섞인 감정이다. 그날의 색과 모양, 공기, 감정 등을 담아 내기 위해 겹겹이 붓이 닿는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모양은 수북이 쌓인 붓질로 견고하게 묶인 듯 보이는 동시에 언제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다.
낯설어진 현실 속에서 대상의 모습을 멀리서 조망하던 태도는 조금 더 가까이, 그것의 피부를 보듯 다가가고자 했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길 바닥, 옆을 지나며 스치는 벽면 등은 내 신체가 닿고 있는, 얼굴을 마주하는 면들이다. 벽과 보도블록의 규칙적인 패턴과 그 위로 그려지는 그림자는 반복적인 리듬을 만드는 동시에 자유분방한 드로잉을 그린다. 네모난 화면으로 들어온 장면은 잘려 나간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고 이는 이전 창과 문, 현수막과 같이 가려진 저 너머의 궁금증으로 능동적 바라보기의 문제를 삼았던 태도의 연장선이다. 일상의 순간에서 특별함을 발견하고 차분히 그림으로 옮김으로써 그림과 관람자를 마주보게 하며 본다는 것과 보여지는 것, 일상과 특별함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